아데에 리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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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EID-A-L0N Operator: Adée Rhysbury To: ON-T-AS Payload: 1 Unit Status: Transmission in progress...
'이 빌어먹게도 적막한 우주는 끝이 나질 않는다.' 아데에 리스버리는 자신이 일지에 막 남긴 문장이 낮설었다. 분명히 말해. 자신의 일지에 그 자신의 필기체로 쓰여진 문장임에도 아데에의 눈에 그것이 수렴된 공간, 잉크의 양, 획의 방향이 종합되어진 문자라는 결정은 있었지만 그것에 선행되어야하는 발상이 아데에의 사고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게 정확하다.
하지만 아데에는 금방 그 이질적인 느낌을 잃어버렸다. 대신 그녀는 정말로 이 공간은 빌어먹을듯이 적막하게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아데에는 자신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물론 보장이 없었더라면.
보장 保障
보장은 이 공간(Space)에서 가장 근원의 법칙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러한 명제들을 이미 알고 있다.
- 질량은 시공간을 휘어지게 한다.
- 다른 생명체를 섭취함으로서 우리는 열량(熱量)을 얻는다.
- 무질서도는 언제나 증가한다. 그리고 하나의 명제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명제 위에 진실로 귀결된다. 보장을 제외하고서는.
보장의 법칙이 근원의 사실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우주에서는 물질조차 탄생할수 없었다. 마치 삼체 운동처럼 우리와 우주는 무한한 법칙의 변화만이 존재하는 차원의 격자에서 영원히 순환되는 에너지의 모습으로 흔들릴뿐. 하지만 지금 당신은 당신의 손을 바라볼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우주(Universe)는 보장의 우주다. 대칭성을 띤다는 뜻이다.
현실에 대한 격리인 반응(反應)의 한 기작인 사고(思考)는, 이 대칭성에 기반해 기대를 충족시키는것을 지성의 근원 법칙으로 가상화 시켰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여기서 구조될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데에. 그녀는 강박적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창 너머의 공간은 그저 먹먹했다. 그녀는 모니터에 표시되어있는 다양한 숫자들과 그래프의 번쩍거림에. 정신을 잃지 않고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가 0이 되길 기다리다 스로틀을 강하게 당겼다.
출력이 증가하며 그녀가 운송하는 화물이 약하게 덜그럭 거렸다. 광속의 84.5%. 모든것이 예상대로다. 이제 선체(船體)는 172,297.676초 이후 역추진을 진행해 속도를 31% 감속해야한다. 빌어먹게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데에는 웨이포인트(Waypoint)의 임박을 빌미로 구석에 던져놓았던 자신의 일지로 다가서서 표지에 묻은 약간의 먼지를 털었다. 갈색의 천연가죽으로 마감된 고급스러운 19세기 양식의 장정, 즉 총체적 사고의 백지는 분명 구식이자 사치였다. 수 그램의 실리콘 칩 하나면 우주의 (거의) 모든 기록을 담을 수 있는 시대에, 산화된 황동 버클과 두꺼운 무명실로 엮인 수백 장의 펄프 뭉치는 그 자체로 오만한 질량의 낭비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 공간에서 아데에의 생물성을 보장했다. 이 우주선에서 유기물은 아데에 자신과 일지, 그리고 약간의 기념음식과 저장 탱크에 담긴 재활용성 플랑크톤이 유일했다.
아데에는 식당으로 즉시 이동하는 대신 자신의 일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표지를 펼친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척추처럼 버티고 있는 실제본이 미세하게. 삐걱거리며 자신과 페이지의 가장 안정적인 위치에 정렬되었다
생명 유지 장치가 뱉어내는 건조한 공기, 제작 단계에서부터 깔끔하게 표면이 정리된 물체들 속에서 일지의 낡은 가죽과 섬유질만이 과거 어느 짐승들이 남긴 미약한 온도와 유기물의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성 패널들과 달리 그것은 아데에의 체온을 천천히 흡수하며 손끝에 거칠고 단단히 감겼다.